자치경찰제 출범과 공동생산 관점의 치안서비스 혁신에 대한 기대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 7월 1일 기대와 우려 속에 자치경찰제가 출범했다. 시범운영을 통해 도출된 각 시도 자치경찰의 1호 정책은 지역맞춤형 치안서비스에 대한 힘찬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대전시의 고위험 정신질환자 응급체계 고도화, 부산과 충남의 주취자(酒臭者) 응급의료센터 개설, 경남과 인천의 어린이 맞춤형 치안서비스 등은 지역 수요에 맞춘 다양한 정책과 서비스 개발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국가경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광역 단위에 설치된 '자치경찰위원회'로 하여금 자치경찰사무만을 관장하게 하면서 인사 및 예산, 지휘체계 등을 둘러싼 갈등도 현실화되고 있다.

자치경찰제의 역사적인 출범에도 불구하고, 자치경찰제를 둘러싼 갈등이 자칫 국민에게는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줄다리기 싸움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무엇보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사이의 권한과 자원의 배분문제에 몰두하면서 자치경찰제를 통해 구현할 시대정신과 치안서비스 혁신의 방향에 대한 담론이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한 번 선택된 제도는 관성이 생기면서 좀처럼 변하기 어렵다는 ‘경로의존성’을 감안할 때, 국가경찰과 차별화되는 자치경찰조직의 설계는 그만큼 중요하고 신중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조직의 설계만큼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자치경찰제를 통해 새롭게 태어날 치안서비스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지난 5월 17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청에서 열린 ‘인천광역시 자치경찰위원회 출범식’에서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과 박남춘 인천시장 등 주요 내빈들이 출범을 축하하는 의미로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치안서비스는 대표적인 공공재이다. 자유방임의 시장경제를 강조하면서 최소국가를 지향하던 아담 스미스의 시대에도 치안서비스는 대표적인 국가기능으로 분류되었다.

이후 치안과 국방으로 대표되는 공공재는 시장실패를 설명하는 핵심 아이디어로 자리 잡으며 정부개입을 정당화하는 불문율의 원리로서 간주되어왔다.

공공재이론의 전제는 바로 사회구성원이 경제적 인간이라서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계산에 밝은 이기적인 개인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혜택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공공재를 두고 너도나도 무임승차 유인을 가지게 된다.

치안서비스를 시장에 맡기게 되면 이기적인 개인들의 무임승차 유인 때문에 아예 공급되지 않거나 과소 공급될 가능성이 높다. 유일한 처방은 합법적인 강제력을 가진 정부가 나서서 강제로 세금을 걷고 적당하다고 판단되는 수준의 치안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정부개입이 공공재 문제 해결의 유일한 수단인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해법의 가능성을 보여준 이가 200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앨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이다.

오스트롬은 사회구성원이 철저히 계산된 단기적 이기심이 아니라 다른 사회구성원과의 상호의존성을 인식하고 협력과 조정을 통해 자율적 규약을 만들고 준수할 수 있다면, 정부의 개입 없이도 공공재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해결책은 구성원의 무임승차 유인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지역사회 단위에서만 유효하다.

예를 들면 작은 마을 단위에서 주민들이 일상적 교류를 통해 조밀한 관계망과 신뢰 및 호혜의 규범이 형성되어 있다면 해당 마을에 치안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민들 스스로 해당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많은 이들이 날로 흉폭해지고 지능화되는 현대사회 범죄를 떠올리면서 오스트롬의 접근방식이 대학의 상아탑에서나 이야기될 법한 이상적이고 순진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세계적인 석학인 오스트롬이 합법적인 강제력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치안서비스를 단순히 주민참여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스트롬의 이론은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의 정부역할의 지나친 확산이 시민들을 공공서비스에 대한 권리와 사적 만족만을 추구하는 수동적이고 이기적인 개인으로 전락시켜왔음을 상기시켜준다.

가뜩이나 계산적인 시장문화가 사회에까지 침투해 이기적인 세상이 확장되어가는 판국에 국가마저 권리의식만 가지고 사회적 책임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민을 양산하는 세태를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오스트롬의 이론의 핵심은 작은 지리적 규모의 ‘지방공공재’(local public goods)일수록 그만큼 주민참여를 활용한 해법이 요구되고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오스트롬의 이론은 실질적 제도적 처방으로 승화된 것이 정규 공공서비스 생산자와 서비스 대상인 시민과의 협력적 관계를 강조하는 ‘공동생산’(co-production)이다. 오스트롬은 미국 시카고시의 치안서비스 사례를 들어 공동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1970년대 시카고에서는 경찰관들이 담당구역을 도보로 순찰하던 것을 비용절감을 위해 순찰차 체계로 전환하면서 동네의 범죄율이 높아지게 된다.

오스트롬은 경찰관들의 도보 순찰이 범죄수준을 낮추는데 기여한 이유를 지역사회가 경찰관들과 함께 생활현장에서 형성했던 비공식적인 관계와 지역사회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서 찾고 있다.

오스트롬의 공동생산의 관점은 선진국에서는 ‘지역사회 경찰활동’(community policing)이라는 이름 아래 제도화되어왔다. 지역사회 경찰활동은 경찰과 지역사회의 공동노력을 통해 지역사회의 범죄나 무질서 등의 문제를 발견하고, 지역사회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그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과정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지역사회 경찰활동은 강도·폭력의 퇴치와 같은 주어진 경찰의 기능만을 강조하기보다는 지역주민의 애로사항과 관심사항에 맞춰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가는 과정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고도로 집권적인 조직구조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분권화된 경찰의 책임을 요구한다.

자치경찰제의 출범과 함께 부각되고 있는 ‘풀뿌리치안’의 핵심 실천모형으로 공동생산 관점의 지역사회 경찰활동을 뿌리내릴 필요가 있다.
풀뿌리치안은 단순히 현장 중심적이고 고객지향적인 맞춤형 치안서비스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본래 ‘풀뿌리’(grassroot)가 상징하는 것은 풀뿌리처럼 서로 얽혀져 있는 일반주민들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풀뿌리는 바로 오스트롬이 강조하고자 했던 강한 상호연결망과 신뢰와 유대를 형성한 주민들의 모습이다.

풀뿌리치안은 단순히 맞춤형 서비스 전달의 의미뿐만 아니라 주민의 풀뿌리 정신까지도 일깨워주는 기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자치경찰제의 출범이 공동생산 관점의 지역사회 경찰활동을 위한 제도적 담론과 실험을 촉발하는 획기적인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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