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을 이용한 알레르기병 치료 멀지 않았다

기생충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서 숙주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 아주 온순한 놈에서부터,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만 피해를 주는 영악한 놈이 있는가 하면, 짧은 기간에 엄청난 피해를 주는 포악한 놈까지 두루두루 있다. 


온순한 종류 중에는 사람 몸에 침입한 다음 특별한 해를 주지 않고 ‘함께 살자’ 하는 식으로 아예 공존을 제안하는 것들도 있다.


그런 것들 중에는 사람의 면역 반응을 조절하거나 발열 반응 등을 나타냄으로써 다른 질환을 호전시키는 이로운 면을 가진 것도 있어 매우 흥미롭다.


특히, 최근에는 온순한 장내 기생충을 이용하여(일부러 감염을 시켜) 사람의 알레르기 질환을 호전시키는 새로운 요법이 등장하여 많은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기생충을 다른 질환의 치료에 이용하는 방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인 1920~1930년대에 난치성 뇌매독(neurosyphilis) 환자에게 말라리아 원충을 접종하여 열 발작이 나게 함으로써 열에 약한 매독균을 죽게 하고 뇌매독 환자를 치료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항말라리아 약제는 당시에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뇌매독이 치료된 다음 말라리아는 쉽게 치료할 수 있었다. 


이 방법으로 많은 난치성 뇌매독 환자의 생명을 구한 일이 있었고 이 방법을 개발한 정신과 의사는 노벨상까지 받게 되었다.

 
최근에는 돼지편충(Trichuris suis; 사람 편충과 비슷함)이나 아메리카구충(Necator americanus; 십이지장충의 하나), 개구충(Ancylostoma caninum; 개의 십이지장충) 등 온순한 장내 기생충들을 알레르기병 치료에 이용하고 있다.


그 이론적 근거는 이른바 ‘위생관련설(hygiene hypothesis)’에 두고 있다. 


즉, 선진국에서는 1980~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피부 아토피나 궤양성 대장염(ulcerative colitis), 크론병(Crohn’s disease), 기관지천식, 알레르기성 비염, 관절염 등 각종 알레르기 질환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그 원인을 여러 면에서 분석해본 결과 이러한 추세가 기생충 질환의 감소(위생상태의 개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아직도 기생충 감염이 많은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에는 알레르기 질환의 빈도가 극히 낮은 반면, 기생충 감염자가 거의 사라진 선진국에서는 알레르기 질환의 빈도가 매우 높게 나타나는 현상이 확인되는데 이런 현상을 ‘위생관련설’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가설은 점차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거꾸로 알레르기 질환의 치료에 기생충을 이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2001~2003년부터 실제로 기생충을 환자 치료에 이용하고 있는 곳은 미국의 아이오와(Iowa) 대학, 영국의 노팅엄(Nottingham) 시립병원과 유럽 여러 나라들이다. 


가장 먼저 사용한 기생충은 돼지편충과 아메리카구충이었다. 돼지편충은 형태 및 생활사, 기생 장소 등 여러 성질이 사람 편충과 비슷하나 사람 편충보다 기생 기간이 짧고 미미한 증상만 일으킨다는 점에서 매우 온순한 기생충에 속한다.


그러나 사람에게 Th2라는 면역반응을 잘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궤양성 대장염이나 크론병 등 장 알레르기 환자에서 과잉으로 높아지는 Th1이라는 면역반응을 중화시킴으로써 대장염 증상을 완화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돼지편충의 알 500~2,500개를 작은 캡슐에 넣고 삼켜야 하므로 처음에는 인도적 차원에서 논란이 많았으나 난치성 대장염 환자의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음이 확인되자 차츰 그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나아가 금년 초에는(2017년) 돼지편충의 분비-배설 항원을 쥐의 뇌 다발 경화증(multiple sclerosis) 치료에 사용한 연구가 덴마크의 코펜하겐(Copenhagen) 대학에서 발표되었다.


사람의 경우 다발 경화증은 위생 상태가 매우 양호하고 기생충이 없는 환경에서 잘 발병하는데, 이 사실에 착안하여 동물실험을 통해 기생충을 이용한 치료 가능성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연구 결과 돼지편충의 분비-배설 항원을 복강으로 주사한 경우 주목할 만한 증상 완화 효과가 관찰되었고, 증상이 완화된 쥐에서는 Th1 및 Th17 면역반응이 뚜렷하게 감소한 반면 반대 작용을 하는 Th2 반응은 증가하여 완화 효과가 면역조절에 의한 것임이 확인되었다.

 
아메리카구충은 사람에게 끈질기게 피해(빈혈 초래)를 주는 기생충에 속하지만 기관지 천식 환자의 치료에 사용되고 있다.


그 근거는 장내에 구충(아메리카구충 포함), 회충 등 기생충을 가진 사람이 기생충을 가지지 않은 사람에 비해 천식(Th1 면역반응이 강세임)이 일어나는 빈도가 유의하게 낮기 때문인데 이는 역학적으로도 여러 차례 증명되었다.


구충은 Th2 면역반응을 강하게 유도하기 때문에 천식 환자에게 구충을 감염시키면 Th1-Th2 면역의 균형을 유지해주기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다만, 천식 환자 치료에는 아메리카구충을 보통 10마리 정도 감염시키는데(더 많이 감염시키면 빈혈이 올 수 있음) 10마리만으로는 그 결과가 신통치 않다는 보고도 있다.


그래서 좀 더 많이 감염시켜야 Th2 면역반응이 제대로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는 천식이냐 빈혈이냐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인데 빈혈이 좀 나타난다 해도 천식이 호전되는 편을 환자들은 더욱 선호한다.


천식이 호전되면 구충에 의한 빈혈은 약제 투여로 쉽게 치료할 수 있다. 한편, 심한 빈혈을 일으킬 수 있는 아메리카구충 대신 사람에게는 빈혈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개구충을 사용하여 천식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도 최근에 시도되고 있다.
 

또한, 선천적으로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 유전자를 가진 쥐에 톡소포자충(Toxoplasma gondii)을 감염시키면 알츠하이머(치매) 진행이 지연된다는 실험적 연구 보고도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사람에게 톡소포자충을 감염시키는 것은 무리한 일이기는 한다.


톡소포자충의 충주(세균의 균주에 해당) 중에는 매우 포악한 종류도 있어 만일 사람의 면역기능이 떨어진다면 심한 뇌염을 일으켜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온순한 여러 기생충들을 이용하여 알레르기 질환 또는 면역질환 등을 치료하는 면역조절 요법이 임상에서 본격적으로 이용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기생충도 이렇게 크게 쓸모가 있게 될 줄은 예전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예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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