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변방에서 중심으로'
지난 4일 치러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신임 대표에 친이계 비주류 4선의 홍준표 의원이 선출됐다.
새롭게 출범한 홍준표 대표 체제는 지난 4·27 재보선 패배 이후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에 생기를 불어넣고, '쇄신'과 '화합'을 통해 당 체제를 개혁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시절 슬롯머신 사건을 강단 있게 수사하며 스타 검사, ‘모래시계 검사‘로 도약한 홍 대표는 지난 1996년 15대 총선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지난 15년간 내리 4선을 하는 동안 그의 위치는 ‘변방’이었다.
야당 시절 ‘대여(對與) 저격수‘로 이름을 날린 데 이어 2006년 서울시장 후보 경선,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 잇따라 출마해 특유의 재치로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당내에서는 줄곧 ‘비주류’였다.
당 전략기획위원장, 혁신위원장 등을 역임했지만, 본인 표현대로 ‘당직다운 당직‘과는 거리가 멀었다. ‘독불장군’, ‘돈키호테‘ 등으로 표현되는 홍 대표의 자유분방한 성품과도 무관치 않다.
고려대 선배이자 1999년 미국 워싱턴에서 함께 생활했던 이명박 대통령을 ‘이명박 선배’라고 부를 만큼 ‘원조 이명박계‘이지만, 친이(친이명박)계에 불참한 점도 ‘변방’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홍 대표는 18대 국회 들어 ‘중심‘으로의 진입을 시도했다.
이명박 정부 탄생 후 첫 집권여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그는 정권 초반 인사 파동과 쇠고기 파동, 친이ㆍ친박(친박근혜) 갈등 등 숱한 난제를 쾌도난마 식으로 풀어가며 ‘신주류’로 급부상했다.
당시 1년간 원내사령탑으로서 ‘홍반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위기 돌파능력과 순발력, 정치감각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조직’의 높은 벽을 못넘고 2위에 머물며 주류를 향한 그의 행보에는 제동이 걸렸다. 당 최고위원이었지만, 주류 측과 일정 거리를 두며 ‘비주류‘를 자처했다.
대신 홍 대표는 서민정책특위 위원장을 맡아 내공을 쌓는데 주력했다. 17대 때 ‘반값 아파트법’, ‘이중국적자 병역기피 봉쇄법‘ 등을 주도한 데 이어 ‘친(親)서민 이미지’를 강화한 것이다.
주류로의 편입을 거부하고 친서민 행보에 ‘올인‘해온 점은 홍 대표가 이번 7ㆍ4 전당대회에서 ‘당당한 후보, 당당한 한나라당’을 내세울 수 있었던 주된 동력으로도 꼽힌다.
다만 이번 전대 기간 내내 지적된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안정한 이미지와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거침없는 입담 등은 총선 승리를 이끌어야 하는 집권여당 대표로서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부인 이순삼(56)씨와 2남. ▲경남 창녕(57) ▲고려대 법학과 ▲부산ㆍ울산ㆍ서울ㆍ광주지검 검사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총재 법률특보, 전략기획위원장, 혁신위원장, 원내대표, 최고위원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15∼18대 국회의원
김진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