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경찰제 출범과 공동생산 관점의 치안서비스 혁신에 대한 기대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 7월 1일 기대와 우려 속에 자치경찰제가 출범했다. 

시범운영을 통해 도출된 각 시도 자치경찰의 1호 정책은 지역맞춤형 치안서비스에 대한 힘찬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대전시의 고위험 정신질환자 응급체계 고도화, 부산과 충남의 주취자(酒臭者) 응급의료센터 개설, 경남과 인천의 어린이 맞춤형 치안서비스 등은 지역 수요에 맞춘 다양한 정책과 서비스 개발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국가경찰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광역 단위에 설치된 '자치경찰위원회'로 하여금 자치경찰사무만을 관장하게 하면서 인사 및 예산, 지휘체계 등을 둘러싼 갈등도 현실화되고 있다.

자치경찰제의 역사적인 출범에도 불구하고, 자치경찰제를 둘러싼 갈등이 자칫 국민에게는 중앙권력과 지방권력의 줄다리기 싸움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무엇보다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사이의 권한과 자원의 배분문제에 몰두하면서 자치경찰제를 통해 구현할 시대정신과 치안서비스 혁신의 방향에 대한 담론이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한 번 선택된 제도는 관성이 생기면서 좀처럼 변하기 어렵다는 ‘경로의존성’을 감안할 때, 국가경찰과 차별화되는 자치경찰조직의 설계는 그만큼 중요하고 신중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조직의 설계만큼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자치경찰제를 통해 새롭게 태어날 치안서비스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치안서비스는 대표적인 공공재이다. 자유방임의 시장경제를 강조하면서 최소국가를 지향하던 아담 스미스의 시대에도 치안서비스는 대표적인 국가기능으로 분류되었다.

이후 치안과 국방으로 대표되는 공공재는 시장실패를 설명하는 핵심 아이디어로 자리 잡으며 정부개입을 정당화하는 불문율의 원리로서 간주되어왔다.

공공재이론의 전제는 바로 사회구성원이 경제적 인간이라서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계산에 밝은 이기적인 개인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혜택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공공재를 두고 너도나도 무임승차 유인을 가지게 된다.

치안서비스를 시장에 맡기게 되면 이기적인 개인들의 무임승차 유인 때문에 아예 공급되지 않거나 과소 공급될 가능성이 높다. 

유일한 처방은 합법적인 강제력을 가진 정부가 나서서 강제로 세금을 걷고 적당하다고 판단되는 수준의 치안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정부개입이 공공재 문제 해결의 유일한 수단인가?’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해법의 가능성을 보여준 이가 200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앨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이다.

오스트롬은 사회구성원이 철저히 계산된 단기적 이기심이 아니라 다른 사회구성원과의 상호의존성을 인식하고 협력과 조정을 통해 자율적 규약을 만들고 준수할 수 있다면, 정부의 개입 없이도 공공재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해결책은 구성원의 무임승차 유인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지역사회 단위에서만 유효하다.

예를 들면 작은 마을 단위에서 주민들이 일상적 교류를 통해 조밀한 관계망과 신뢰 및 호혜의 규범이 형성되어 있다면 해당 마을에 치안문제가 발생했을 때, 주민들 스스로 해당 문제를 해결하려는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많은 이들이 날로 흉폭해지고 지능화되는 현대사회 범죄를 떠올리면서 오스트롬의 접근방식이 대학의 상아탑에서나 이야기될 법한 이상적이고 순진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세계적인 석학인 오스트롬이 합법적인 강제력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치안서비스를 단순히 주민참여로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스트롬의 이론은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의 정부역할의 지나친 확산이 시민들을 공공서비스에 대한 권리와 사적 만족만을 추구하는 수동적이고 이기적인 개인으로 전락시켜왔음을 상기시켜준다.

가뜩이나 계산적인 시장문화가 사회에까지 침투해 이기적인 세상이 확장되어가는 판국에 국가마저 권리의식만 가지고 사회적 책임의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민을 양산하는 세태를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오스트롬의 이론의 핵심은 작은 지리적 규모의 ‘지방공공재’(local public goods)일수록 그만큼 주민참여를 활용한 해법이 요구되고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오스트롬의 이론은 실질적 제도적 처방으로 승화된 것이 정규 공공서비스 생산자와 서비스 대상인 시민과의 협력적 관계를 강조하는 ‘공동생산’(co-production)이다. 오스트롬은 미국 시카고시의 치안서비스 사례를 들어 공동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1970년대 시카고에서는 경찰관들이 담당구역을 도보로 순찰하던 것을 비용절감을 위해 순찰차 체계로 전환하면서 동네의 범죄율이 높아지게 된다.

오스트롬은 경찰관들의 도보 순찰이 범죄수준을 낮추는데 기여한 이유를 지역사회가 경찰관들과 함께 생활현장에서 형성했던 비공식적인 관계와 지역사회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서 찾고 있다.

오스트롬의 공동생산의 관점은 선진국에서는 ‘지역사회 경찰활동’(community policing)이라는 이름 아래 제도화되어왔다. 

지역사회 경찰활동은 경찰과 지역사회의 공동노력을 통해 지역사회의 범죄나 무질서 등의 문제를 발견하고, 지역사회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그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과정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지역사회 경찰활동은 강도·폭력의 퇴치와 같은 주어진 경찰의 기능만을 강조하기보다는 지역주민의 애로사항과 관심사항에 맞춰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가는 과정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고도로 집권적인 조직구조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분권화된 경찰의 책임을 요구한다.

자치경찰제의 출범과 함께 부각되고 있는 ‘풀뿌리치안’의 핵심 실천모형으로 공동생산 관점의 지역사회 경찰활동을 뿌리내릴 필요가 있다.

풀뿌리치안은 단순히 현장 중심적이고 고객지향적인 맞춤형 치안서비스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본래 ‘풀뿌리’(grassroot)가 상징하는 것은 풀뿌리처럼 서로 얽혀져 있는 일반주민들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풀뿌리는 바로 오스트롬이 강조하고자 했던 강한 상호연결망과 신뢰와 유대를 형성한 주민들의 모습이다.

풀뿌리치안은 단순히 맞춤형 서비스 전달의 의미뿐만 아니라 주민의 풀뿌리 정신까지도 일깨워주는 기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자치경찰제의 출범이 공동생산 관점의 지역사회 경찰활동을 위한 제도적 담론과 실험을 촉발하는 획기적인 기회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twitter facebook me2day 요즘 목록
오피니언 > 사설·기고
오피니언 > 사설·기고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공지 원고를 송고하실 분은 아래 이 메일을 애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 편집부 2011.05.19
123 성숙한 젊은이들사진첨부파일 금정복 2024.01.04
122 안동 낙동강변 초록쉼터로 변해야 !사진첨부파일 금정복 2022.12.08
121 따뜻한 가정을 책임지는 주택용 소방시설사진첨부파일 금정복 2022.12.08
120 돌파감염과 변이 바이러스, 슬기롭게 극복하려면사진첨부파일 금정복 2021.08.20
119 코로나19 백신 접종간격 6주 연장 효과와 안전성..사진첨부파일 금정복 2021.08.20
118 개청 4주년 소방청, 국민안전의 적을 물리칠 화살..사진 승인 2021.07.26
117 경관을 담아 역사의 순간 그리다사진 승인 2021.07.26
>> 자치경찰제 출범과 공동생산 관점의 치안서비스 혁신..사진첨부파일 승인 2021.07.21
115 목숨을 건 도박, 졸음운전에서 탈출합시다사진첨부파일 승인 2021.07.21
114 4월 장애인의 달 요람에서 무덤까지 장애인복지서비..사진 승인 2021.04.19
113 강소기업과 함께 日수출규제 위기를 기회로사진 승인 2019.12.24
112 2020년 예산, 대한민국호 재도약의 발판 기대사진 승인 2019.12.23
111 재난관리 선진국으로 성장할 대한민국을 기대하며사진 편집부 2019.05.15
110 장애인 인식개선의 길, 장애인 웹툰에서 찾다 편집부 2018.10.25
109 “안동시와 도청 신도시의 상생 발전을 위한 제언”..사진 편집부 2018.10.25
108 봄 향기는 콧등을 타고 운전은 안전하게사진 편집부 2017.04.06
107 성주군수는 사드 알박기의 부역자가 되려 하는가 편집부 2017.04.06
106 복수사진 편집부 2017.03.23
105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사진 편집부 2017.03.23
104 시민이 동참할 때 “안전사고 예방된다 편집부 2015.04.14
103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사진 편집부 2015.04.14
102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가난사진 편집부 2015.03.19
101 올바른 112신고, 안전으로 안내하는 네비게이션!..사진 편집부 2015.03.10
100 학교폭력은 이제 그만사진 편집부 2015.03.04
99 안전과 질서로 살맛나는 지역을 만드는 희망의 경찰..사진 편집부 2015.03.04
98 책 자랑사진 편집부 2015.03.04
97 인간은…사진 편집부 2015.02.24
96 나라를 위한 기도사진 편집부 2015.01.15
95 오늘이 슬프더라도사진 편집부 2015.01.07
94 기초소방시설 설치로 화재피해 줄이자 편집부 2014.12.29
93 화재예방 조그만 관심부터 출발해야사진 편집부 2014.12.16
92 내 마음의 작은 기쁨사진 편집부 2014.12.16
91 자식은 부모의 거울사진 편집부 2014.12.16
90 행복하고 싶다면사진 편집부 2014.11.24
89 가을 예찬사진 편집부 2014.11.19
88 가을 예찬사진 편집부 2014.10.27
87 범죄 피해자도 인권이 존중되어한다 편집부 2014.10.07
86 가을철 심한일교차 건강관리 유의사진 편집부 2014.09.16
85 2014 을지연습을 맞이하여사진 편집부 2014.08.19
84 인간 삶의 무늬, ‘인문’의 향연에 초대하며 편집부 2014.07.04
83 전자발찌 제도! 재범률 ZERO의 한계에 도전하며.. 편집부 2014.06.23
82 4대 사회악 근절에는 모두가 함께 나서야 한다사진 편집부 2014.04.14
81 치안인프라 구축으로 홍익치안 구현 편집부 2014.02.13
80 농업경영체 등록 및 직불금 신청을 한번에사진 편집부 2014.02.13
79 ‘112허위신고!’ 우리 모두가 피해자입니다사진 편집부 2013.10.31
78 농번기 교통사고 예방에 모두가 최선을 편집부 2013.10.29
77 가정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사진 편집부 2013.10.22
76 '나 또한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경각심을..사진 편집부 2013.10.17
75 찰칵, 조심하세요 편집부 2013.09.27
74 Drink After, Drive Stop!(음주.. 편집부 2013.09.27
73 수확철 농산물 절도 예방 모두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편집부 2013.09.27
72 기초질서 확립, 세상을 바꾸는 사소함의 힘 편집부 2013.09.27
71 말벌떼 비상! 피해예방요령은? 편집부 2013.08.30
70 잃어버린 양심 편집부 2013.08.30
69 윤리의식이 해이해질 때 위기가 찾아온다 편집부 2013.08.08
68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는 저임금 근로자의 국민연금.. 편집부 2013.07.24
67 빗길 수막현상 교통사고 주의 편집부 2013.06.19
66 여름철 물놀이 안전과 심폐소생술(CPR) 편집부 2013.06.19
65 무더운 6월 폭염에 대비 하자 편집부 2013.06.17
64 사랑한다면 '건강검진' 선물하세요 편집부 2013.05.24
다음 글쓰기새로고침
처음페이지이전 10 페이지123다음 10 페이지마지막페이지
 
클릭뉴스
최근글,댓글 출력
부모·자식 버린 패륜 가족, 유산 상속 ..
경북교육청 공무원 신규임용 경쟁률 5.4..
의대교수 사직서 효력 발생 시작…긴장 고..
LH, 올해 신축매입임대 1만호 추가 매..
국토부, 노후 계획도시 특별법 시행
한은, 1분기 경제 성장률 1.3%…수출..
가정의 달 선물 수요 선점 경쟁 불붙었다..
리만코리아, 북미 컨벤션 성료
제로슈거·제로칼로리 ‘토레타! 제로’ 출..
2월 출생아 수 ‘2만명’ 밑돌아
최근글,댓글 출력
성숙한 젊은이들
안동 낙동강변 초록쉼터로 변해야 !
따뜻한 가정을 책임지는 주택용 소방시설
돌파감염과 변이 바이러스, 슬기롭게 극복..
코로나19 백신 접종간격 6주 연장 효과..
최근글,댓글 출력
윤경희 청송군수, 코로나19 백신 예방접..
장욱현 영주시장, 조성계획 기본용역 착수..
임종식 경북교육감, 경산교육지원청에서 열..
장세용 구미시장, (재)구미먹거리통합지원..
이강덕 포항시장, 세포막단백질연구소 준공..
최근글,댓글 출력
대구 무파사,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청소년 한우 맛체험 행사 개최
수성구희망나눔위원회, 여름 김치 나눔
5월 가정의 달.다양한 행사 추진
안동사투리 경연대회
오늘의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