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젊은이들

김형국 칼럼니스트,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

또 그렇게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았다. 
언제나 변함없이 유구하게 흘러가는 시간이지만 매듭이 지어지는 것 같은 이런 때에는 나이의 무게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낀다는데 정말 한해가 그렇게 지나갔다. 또 그런 만큼 아직도 다다르지 못한 성숙한 세계에 대한 동경은 커진다.

며칠 전 2022 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다룬 영화 크레센도를 봤다. 

물론 이영화의 주인공은 임윤찬이었지만 다들 하나같이 훌륭한 피아니스트였으며 나이를 뛰어넘어 매우 성숙한 내면을 가진 젊은이들이었다.

1958년 소련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 첫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그들의 의도(?)와 달리 자국 피아니스트를 제치고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이 우승해 스타탄생을 알린 것처럼 불과 18세의 나이로 우승한 임윤찬 역시 혜성과 같이 세계음악계에 나타났다. 
특히 국내에서는 조성진 원톱체제에서 확실한 투톱체제 전환을 만들었다. 

51개국 388명의 젊은이들이 8개월간의 경쟁결과 본선에 초대된 30명의 경연과정을 영화를 다룬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우승한 2015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다룬 영화 파이널리스트도 대단히 재미있고 세계적 콩쿠르에 참가한 젊은 연주자의 모습과 진행과정을 잘 그린 영화지만 ‘크레센도’는 여기에 감동을 더한 작품(영화적 완성도는 별개로)이란 생각이 든다.

콩쿠르에 임하는 젊은이들의 자세가 너무나 성숙하다. 
당연히 경쟁에서 이기고자 모였지만 그것을 위해서 우선 좋은 연주를 하자, 그래서 심사위원들의 마음에, 관객들의 영혼에 다가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자세다. 

자세한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너무나 환한 그들의 표정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물론 매 라운드가 진행 될수록 탈락자는 생길 수밖에 없고 따라서 희비가 엇갈리지만 그들은 결과에 따라 고개를 떨어뜨리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으쓱하지도 않았다.

 오랜만에 이런 의연한 모습들을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악에 집중하는 모습들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 무대 뒤에서 그리고 협주곡의 전주가 울리는 동안 첫 음을 내기까지 머릿속으로 그 소리를 생각하며 오롯이 음악에 집중하고자 처절하리만큼 마음을 모은다. 

보름이상 걸리는 본선 기간 내내 초점을 흐리게 하지 않기 위해 말도 아끼고 호흡을 조절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멋지게 보였다.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그때그때 단발마적인 언행으로 좌충우돌하고야 마는 나 같은 어른들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이 인기를 끌만큼 산만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들 젊은이들은 차원이 다른 세계를 보여줬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를 주최하는 이들도 기본적으로 음악과 연주자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했다.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나자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에서는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회원 자격을 박탈했다. 

그리고 푸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세계적 지휘자 게르기예프를 비롯한 많은 러시아 음악가들이 퇴출되는 상황에서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러시아 젊은이들의 참가를 막지 않았다. 

그것은 성장의 길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로 인해서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초니(동메달), 러시아의 안나 게니셰네(은메달)가 함께 시상대에 오르는 감동적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어쩌면 굉장히 어색한 순간이 연출될 수도 있었지만 성숙하고 신중한 그리고 때로는 단호하면서도 품격 있는 젊은이들의 처신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미 꽤 회자 된 바 있지만 ‘임윤찬 어록’이라고 할 만큼 많은 명언이 영화에 새겨져 있다. “ 음악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혼자 고립 돼야 한다. 

고민하고 외로운 순간에 음악의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홀로 자신의 본 모습을 응시하며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보다는 늘 바깥으로만 눈을 돌리는 우리에게 하는 말 같다.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음악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존재하는 것 중 몇 안 되는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이 인간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담긴 음악을 하는 연주자이기에 결선을 마친 후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그에게 다가가 기꺼이 함께 사진을 찍으며 그들에게도 평생 잊을 수 없는 연주였다고 했다. 

무대에 서본 사람들은 단원들의 이 같은 칭찬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잘 알 것이다. 이런 내면을 가지고 있기에 그의 음악이 남다른가보다.

콩쿠르에 참가한 연주자들을 관리 대상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깊이 존중하고 극진한 자세로 대회를 진행하는 사람들과 거기에 걸 맞는 실력과 품성을 갖춘 성숙한 젊은이들이 만드는 상호 긍정적 선순환 구조를 그린 영화였다. 

우리가, 우리 예술가들이 이처럼 성숙하지 못할 때 세상으로부터, 정치로부터 절대 존경받지 못하며 순도 높은 예술을 만들 가능성도 매우 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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